소부님 본문에도 설명한 것처럼
[“ 시민운동이라는거 자체가 사회구조의 민주화가 완성된상태와 권력의 상식적인 작동을 전제하에 가능한 운동이라는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 박원순으로 대변되는 시민운동진영의 사회인식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어느정도 성숙된 한국의 민주주의적 환경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것을 그 누구도 상상못할 퇴행을 만들어버린 쥐새끼가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관련 글 :  박원순 머저리가 아니라 시민운동의 숙명같은 한계였다 / 소부

http://knowhowup.com/73

 

그런데 문제는 김대중에 이어서 노무현 정부가 되어서도 사회구조의 민주화 토대는 대단히 취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가장 취약한 정권을 상대로 주제 넘치는 견제와 비판이라는 시민사회운동을 전개한 자들이라는 겁니다.

 

. 상상 못 할 퇴행을 만들어버린 쥐새끼와 저들은 [공동정범] 인 것 입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마치 자기들도 쥐새끼에게 피해를 입었다며 억울하다고 눈물 짜는 것은 가증스런 위선적 [알리바이] 라는 것이지요.

 

1차 대전후의 독일 바이마르정부에서 그야말로 백가쟁명의 시민사회단체가 만개를 합니다.

 

이들 독일 시민사회단체가, 그들의 자유로운 활동 토대를 마련해준 바이마르정부 보다는 오히려 히틀러 세력에게 우호적인 제스처 (= 함께 사진찍기 )만 골라서 자행하고, 결국 히틀러의 집권을 초래하고, 히틀러 집권후에는 결국 탄압 당했던 그 작태와 1mm도 다르지 않습니다.

 

단언 합니다- 저들 역시나 히틀러 집권에 혁혁한 공훈을 세운 공동정범입니다.

 

박원순 같은 독일 시민사회단체 역시나 2가지 꽃놀이를 즐겼습니다.

 

첫째. 노무현 같은 바이마르 정부와 거리를 둠으로써 어용이라는 시비를 차단하고, 비정치적이라는 공정성의 명분을 십분 활용 했구요.

 

둘째, 가까이 해 보았자, 어용 딱지나 붙을 뿐 실속없는 개털인 노무현 바이마르정부 보다는 기실은 후원이나 기부금에서 영양가 있는 범털인 재력가들, 종교및 사학 재단들은 전부다 히틀러 쪽에 있었거든요.

 

그야말로 꽃놀이 환경이었단 말입니다.

 

선거 때 만 되면 한나라당 후보한테 가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후원자 거든요. 평소 후원하는 후원자가 사진 좀 같이 찍자는 데 거절 못하는 거죠.

 

사회적 기업은 뭐 땅 파서 운영합니까?

 

. 사회적 시민운동이네 뭡네 해도, 그들의 자양분 토대는 히틀러 우호세력이었다는 걸 여실히 드러낸 것 아닙니까?

 

그래 놓고는 국정원이 그럴 줄 몰랐네~, 후원세력이 그렇게 등돌릴 줄 몰랐네~ , 진정 난 몰랐었네 ~”   눈물의 기자회견으로 마치 억울하게 탄압받은 피해자연출을 해요.

 

그래서 정신 좀 차렸나 싶더니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선거 때 되면 한나라당 후보 캠프에 가서 우의를 표명합니다. 왜냐? 그자도 평소 영양가 있는 후원관련자 이거든요, 그런자가 부르니까 또 가는 겁니다 같이 사진 찍으러,

 

 

사회운동을 정파성과 연관 시키지 말라는 [만능의 방패]를 써먹던 분이 이제 정치권에 출마를 한 겁니다. 자신과 자신들의 시민사회운동은 억울하게 탄압 받았다면서 말이지요.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하세요. 바이마르 노무현 정부를 타도하고 쥐새끼 히틀러의 탄압을 초래한 공훈에는 자신들의 무감각한 선의도 함께 부역했다는 것을 말 입니다.

 

개인의 선의와 집단의 선의는 이래서 다른 겁니다 (= 노하우업 사이트의 중심 테제입니다)

 

정치란, 집단의 이해와 세력을 다루는 가장 엄혹한 영역입니다.

 

그런 정치영역에 출사를 하려면 최소한 상기와 같은 과오에 대한 정치적 각성이 전제 되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강력한 우군이 되는 겁니다.

 

  

추가 ]

김여진 칼럼이 한겨레신문에 떳군요

[세상 읽기] 나는 모른다 / 김여진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95514.html

 

이 역시 마찬가집니다.  김여진 개인의 선의로 바라보는 세상이나 안철수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여진 개인의 선의 가지고  실리콘밸리라는 안철수의 친기업 환경 모델이, 한진중공업 고공 크레인 농성 김진숙의 희망으로 둔갑 포장시킨다면 그것은 대단히 '안이한 낭만적 위선' 입니다.

 

개인의 선의가 집단에서는 위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개인과 집단은 다릅니다.

 

 

 

http://knowhowup.com/74



Posted by 아프로만 노하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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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knowhowup.com BlogIcon 아프로만 노하우업 2011.09.09 15: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여진 칼럼 제목 부터가 = [나는 모른다]

    저 할짓 다해 놓고서는, 아니 다른 사람들까지 동참하게 해 놓고서는 내 놓는 발뺌이 [나는 모른다]

    - 나는 가수다의 '김제동'
    - 희망버스의 '김여진'

    대단한 선의를 가진 사람들 입니다. 인정 합니다.

    그러나 엄연한 정치행위 (= 나가수의 '룰' 이라는 것 정치행위) 행사 끝에는 결국

    " 나는 모른다 " = 다분히 발뺌성 연막 이죠.

    이것은 무책임 한 겁니다.
    집단이라는 정치영역을 무책임한 감성으로 여기면,결국은 어버이 수령이나 쥐새끼 히틀러가 강림 합니다.

  2. Favicon of http://greenetwork.tistory.com BlogIcon 안달레 2011.09.12 1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다른 호기심을 갖게하는 그래서 나름 생각을 넓히는 글입니다. 뭐라 제 의견을 내놓을 만큼 정리가 된건 아니지만.. 자주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