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내용은 “현대인은 ‘차이의 소비’를 추구한다”는 말로 요약된다그런데, 저것이 반드시 '현대인' 만 해당될 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차이 나는 소비' 이것은 동물의 사회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형성의 동기이다.

단 사람과 동물과 다른 것 은, '잉여' 를 복제 내지는 재생할 줄 안다는 것 뿐,

 

동물세계에도 있게 마련인 '잉여' 즉 자본의 원천동기는 '차이 나는 소비' 이다.

고로, 자본의 [원천동기] 는 생물사회가 존재하는 한 [불멸] 이다.

 

- 차이 나는 소비 - 라는 게 뭘 까?

 

l      남들이 무명옷 입을 때 비단 옷 입는 것 ( 무명옷과 비단옷 간에 사용가치의 차이는 미미하다 )

l      서민이 베드민턴 치면 상류층은 테니스를 쳐야 한다

l      서민이 테니스로 쫓아오면 상류는 골프를 쳐야 한다

l      골프가 서민까지 대중화되면 상류층은 요트로 달아난다

l      요트가 대중화되면 자가용비행기로 달아난다

 

잉여를 복제하는 그 원천의 동기 즉 = 자본의 동기, 는 이처럼 끝이 없다.

끝이 없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차이> 이 자체가 <동기> 이기 때문이다.

 

고로 <차이> '혁파' 하려고 하는 것은 생물계의 원천부정이다.

<차이> 가 아니꼽냐? 지구를 떠나거라~~,

 

<차이만 형성> 된다면 그것이 곧 <자본형성의 동기> 인 것이다.

자본주의 한계내지 종말을 기대하는 것은 고로 대단히 어리석은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부작용> 은 어디에 촛점을 두고 개선해야 할까?

 

정답은 <복제> .

복제를 컨트롤 하느냐 못하냐, 복제가 순기능이 되느냐, 역기능이 되느냐,

. '신진대사' 에 따라서

그 사회를 흥하게 하는 동기가 쇠하게 되는 동일한 요인이 된다.

 

<복제를 위한 복제 = 자본의 자기증식 무한속성 > 여기에 촛점을 두어야한다.

 

<차이, 차별> 에다가 개선의 촛점을 두는 것, <형평, 평등>에다가 촛점을 맞추는 것은 번짓수 헛짚은 헛짓이다.

 

<차이나는 소비> 그 자체가 자본의 동기이기 때문이다. 고로 <자본은 불멸> 이다.

 

암은 '불멸' 이다, 단지 '복제' 만을 제어 해야할 뿐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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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매거진:  자본주의보다 힘센 ‘명품주의’시대  -  최효찬, 2009-09-03

http://www.kbizweek.com/cp/view.asp?vol_no=718&art_no=32&sec_cd=1660

 

이 주의 명작 : ·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홍콩 영화배우 청룽(成龍)은 2008년 말에 그가 배우 활동을 하면서 모은 4000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청룽은 “창고에 귀중품을 채울수록 오히려 큰 짐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아무리 비싼 명품도 결코 마음을 채울 수 없다고 고백했다. 청룽은 수많은 명품 사재기를 한 후에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톡·톡·톡= 사람들은 결코 사물 자체를 그 사용가치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자기 집단에서의 소속을 나타내기 위해서든, 아니면 보다 높은 지위의 집단을 준거로 삼아 자신의 집단과 구분하기 위해서든 간에 사람들은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짓는 기호로서 사물을 항상 조작한다.

현대 소비사회를 날카롭게 진단한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문예출판사 펴냄)’는 다소 난해하지만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현대인은 ‘차이의 소비’를 추구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차이의 소비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고 싶어 하는 차이에 대한 욕구이며 여기에는 사회적 의미에 대한 욕망이 내포되어 있다. 쉽게 비유하면 여성들은 흔히 다른 여성들과 차이를 과시하기 위해 비싼 옷을 산다고 한다. 다른 여성이 그 옷을 입고 있으면 그만 입기 싫어지는데 차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보드리야르는 소비가 개인 수준에서 욕구에 따라 무질서하게 이루어진다는 뒤르켐의 정의와 다르게 해석한다. 소비는 하나의 가치 체계이며, 체계라고 하는 용어가 집단 통합 및 사회통제의 기능으로서 포함하는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소비도 ‘사회화’의 과정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톡·톡·톡= 소비사회, 그것은 또한 소비를 학습하는 사회, 소비에 대해 사회적 훈련을 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소비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개성화(個性化)는 차이 나는 소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차이 나는 소비가 다른 사람과 구별 짓는 하나의 기호로 작용하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소비함으로써 ‘나는 너와는 다르다’는 기호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극단으로 차이를 추구할 경우 ‘소비 거부’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톡·톡·톡= 그것은 더 이상 과시적이거나 뽐냄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태도와 검소함, 겸손함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런 행동들은 결국은 보다 교묘한 차이다.

사물 거부를 통한 차이화는 역설적으로 소비 중에서도 최고의 소비다. 최근 마이클 잭슨 사망 이후 TV에서 그의 생전 공연 모습을 특집 방송으로 보여주었는데 그때 특이한 것은 마이클 잭슨의 의상이었다. 러닝셔츠를 입었는가 하면 트레이닝 바지와 같은 후줄근한 패션을 입고 있었다. 그것이 검소함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인데 오히려 그게 더 자신을 과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이 돈이 없어서 ‘찌질이 패션’을 한 것이 아니다.

톡·톡·톡= 중간계급은 오히려 과시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이 점에서는, 그들은 문화적으로 순진하다.

반면 상류계급은 오히려 ‘과소 소비’를 하기도 한다. 데이비드 리스먼에 따르면 상류계급이 과시적인 과소 소비의 전략을 통해 출세 제일주의자들에게 ‘우리는 너희 졸부들과 다르다’는 일종의 시위를 한다고 설명한다. 졸부와 한 묶음으로 취급되는 게 싫어 그들과 경계선을 세우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톡·톡·톡= 사회적 모순의 해결이라고 하는 것은 평등화가 아니라 차이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소비사회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팽배해 있다. 이 모순은 마르크스의 실험이 실패로 귀착되고 있듯이 ‘평등화’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보드리야르는 사회적 모순은 차이 나는 소비를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관료제와 미디어가 개인들에게 차이 나는 소비를 추구하게 함으로써 끊임없이 욕구를 자극한다. 이때 소비는 사용가치를 위해 소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한다.

톡·톡·톡= 상품의 소비란 사용가치의 소비를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 즉, 행복·안락함·풍부함·성공·위세·권위·현대성 등의 소비도 포함하는 것인데, 특히 이 후자에 소비의 본래 의미가 있다.

톡·톡·톡= 따라서 소비는 그 자체만으로도 모든 이데올로기를 대신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그 자체만으로 사회 전체의 통합을 담당할 수 있다.

에쿠스 승용차를 타는 사람은 새로운 신형 모델이 나올 때마다 새로 구입해야 한다. 사용가치, 즉 품질에 문제가 없어도 구형 에쿠스를 타면 사회적 지위가 뒤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신형으로 바꾸려고 한다. 휴대전화 역시 구형이라면 자칫 시대에 뒤처진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신형으로 교체한다. 품질과 같은 사용가치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위와 같은 껍데기에 현혹되는 기호가치를 소비하는 것이다.

기호가치의 추구는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지위나 위신을 차지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이 지속적으로 수요를 일으켜 산업으로 이어지면서 자본주의를 유지해 나간다. 이때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자본가뿐만 아니라 관료제와 함께 미디어가 꼽힌다. 미디어는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소비를 자극해 수요를 창출해 낸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는 경제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톡·톡·톡= 선전의 의미 작용은 차이의 산업적 생산에 속한다. 이것이 소비의 체계를 가장 강력하게 정의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꽤 어려운 말이지만 차이는 상대적인 비교로 인해 발생한다. 비교하지 않으면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비교를 바로 광고가 만들어 낸다. 미디어는 개인들에게 끊임없이 광고를 통해 차이 나는 소비를 자극한다.

차이 나는 소비를 추구하다 보면 결국 모두가 개성이 없어지게 된다. 여성들이 모두가 똑같은 명품을 들고 있는 것과 같다. 짧은 미니스커트의 유행은 차이 나는 소비를 추구하지만 몰개성화로 이어진다. 아파트를 아무리 꾸며도 차이가 나지 않는 아파트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다만 ‘래미안’과 같은 브랜드를 소비하기 위해 더 돈을 모으게 된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가는 것도 차이의 소비에 해당한다. 차이 나는 소비를 추구하면서 명품산업은 더욱 발전한다. 즉, 차이 나는 소비가 생산적 활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톡·톡·톡= 사회적 차이화의 논리는 사람들이 상품(사물)의 구입과 사용을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며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위세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비란 생산적인 활동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명품을 손에 넣지만 사람들의 생활이 더 유복하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소비를 경쟁적으로 하게 하는 게임만이 더 치열해질 뿐이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대강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외제차나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어느덧 청춘기를 지나 장년이 되고 또한 사회적 모순에 대한 자각도 사라지고 만다.

톡·톡·톡= 코드의 수준에서는 혁명이 있을 수 없다. 아니, 혁명은 매달 일어난다. 그것은 유행의 혁명이며 다른 혁명들을 실패하게 한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혁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사람들이 모두 유행의 코드에 맞춰 소비를 추구하게 함으로써 혁명의 열정을 식게 한다는 것이다. 소비사회에는 오직 유행의 혁명이 되풀이될 뿐이다. 명품 브랜드에 대한 욕망을 부추김으로써 혁명 대신 소비에 열광하게 한다. 우리는 너나없이 미디어가 이끄는 소비에 도취돼 있다.

1970년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은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시대를 해독할 수 있는 유용한 지침서가 되고 있다.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학적 문화 지체가 30년 정도 되는 셈이다.

최효찬 소장은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

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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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2009-09-12

 

 

아프로만    2009-09-12

<차이> 라는 단서를 잡기는 잘 잡았는데,
결말의 촛점이 어슴프리 아삼삼한 삼천포로 빠져서 결국 쎅쉬한 '퍄숑' 으로 뒹굴어 버린 책

왜 좀더 치열하게 생각해서 <복제> 라는 촛점을 발견하지 못할 까?

하여간에 저래서 <문예반> 들은 일생에 신뢰할 것들이 못된다.

 

 

 

땡순이    2009-09-12

프랑스 철학자들은 너무 수다스럽다는...소비가 아편(종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렵게 하고 있는 듯... 근데, 잉여의 자기복제, 이거 마르크스주의가 씨름한 거 아닙니까?

Posted by 아프로만 노하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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