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를 하나 해 보겠다. 다름 아닌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 담긴 기본적인 신화는 어린 아이에서 어른으로의 성장이야기이. 그런데 이걸 철학적으로 풀어 보자면, 인간의 자유의지와 자의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연이라는 "삶의 공동체"에서 스스로가 분별하고 창조주와 대등한 위치에 서려는 "해방의식"이 머리속에 들어왔을 때부터 인간의 고생길은 훤하게 아우토반화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탈"의 끝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지구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핵무기이다. 이쯤 되면 인간의 능력이나 "자유의지"에 대한 회의가 일어날 법도 하지 않나?

 

물론 서구에서는 이런 반성의 여파인지, "탈근대"주의가 나오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건 아폴로에서 박쿠스로 약간 옮겨가는 "복고"에 가깝다고 본다. 언제나 "개인"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서양 엘리트들의 상상력의 한계이다.

 

시간을 앞으로 빨리 돌려서 보자. 미국 같은 나라는 서양의 "자유주의자"들이 만든 최대의 걸작품이다. 건국이념도 유럽 중산층이나 서민층의 이념인 "자유"이다. 미국은 원래부터 "자유"라는 열쇠말로 만들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기반"이 약하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유"라는 것을 거의 최대치로 향유하면서 그런대로 돌아가는 이유는 "총기소유의 자유"가 한 몫하고 있다고 본다. 이미 미국사회는 수억정의 총기가 깔려있는 나라이다. 총기구입도 마음만 먹으면 쉽다. 각 개인이 수가 틀리면 타인을 "한 방"에 없애 버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너무나 쉽게.

 

그래서 서로 서로가 조심스럽게 대한다. 쓸데없이 인상 쓰지 않고 되도록이면 친절하게 대한다. 얘네들이 특별히 개화되거나 선진화가 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 정색을 하고 행하는 대화도 되도록이면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방법으로 대화를 한다. 이것을 한국에서는 "신사적"이라고 한다.

 

얘네들의 조상은 수많은 인류를 도륙하며 성장해온 "카인"의 후예들이다. 폭력성과 야만성이 핏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시뻘건 피가 줄줄 흐르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자주 먹는 이유는 이런 갈증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요즘같이 "대량살상" 총기사고가 빈번해지면 이런 의식이 다시 피드백이 된다.


개인주의 사회가 잘 돌아갈려면 "자율"이 중요하다. 아프로만님의 표현을 빌자면 개인들 서로간에 "염치"가 있어야 공동체가 건전하게 돌아갈 수 있다.

 

◀ 인간이 자아에 눈을 뜬 최초의 의식은 '염치(부끄러움)' 이다

    - 아프로만  창세기 (?) 

 

서양에서는 잠재된 폭력성과 야만성이 되려 "자율"의 기제로 작용했다. 동양은 도덕과 예의이다. 한국에 서양식 개인주의 사고가 들어온 이후, 최대의 실패작은 어맹뿌이다. 자신의 욕망에 스스로 절제를 가하는 "자율"도 없고, 유교적인 덕목인 "염치"도 없는 국적불명의 인간이 어맹뿌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에는 수많은 작은 어맹뿌들이 있다. 이들이 공동체의 성장을 좀 먹고 있다. 박정희가 자기 부하의 ""에 비명에 갈 줄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방자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이야기로 시작했으니 한 마디 더 하겠다. 유대교의 전통으로 봐도, 예수의 가르침을 봐도, 사도 바울의 재해석을 봐도, 기독교의 핵심은 "공동체"주의이다. 아담과 이브의 개인화를 "타락"으로 파악하는 신학을 봐서도 그렇다. 이것을 "기복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신앙을 철저하게 "개인주의"화를 시키고 있는 한국의 지도자들은 또한 어맹뿌들이다.

 

자율의식도 없고, 염치도 없는 수많은 개인들이 "개인주의"를 숭상하면 그것은 파국이다. 인간이 어디 무인도에 가서 혼자서 살지 않는 한, 즉 사회에 모여서 살고 있는 한 "인간해방"의 조건은 "자율"이라고 본다. "자율"은 공동체 안에서의 조화이다. 개인의 능력, 자유, 주어진 기회 등등이 "자율"을 함양하는데 쓰여져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시민들은 동양학에서 말하는 "관계론"을 재 발견하고 재 학습해야 한다고 본다. 기독교 개신교도들이라면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서양의 종교개혁운동이 로마의 헤게모니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을 뿐이지, 기독교공동체주의에 대한 항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명심하면 좋겠다. 역으로 말하면 종교개혁운동은 정말로 잡다한 민족들로 구성된 유럽의 분열성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본다. 오죽하면 마르틴 루터도 "후회"를 했을 것인가.

 

자신의 개인적인 역량을 계발함과 더불어 중앙과 지방을 골고루 발전시키는 균형발전 모델, 농촌일손 돕기 운동 이나 환경운동, 복지제도의 확충, 질서지키기 운동, 노동가치를 높이는 운동 등 이 모든 공동체적 관심사를 유기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형이 한국사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공동체적 시민의식을 기르는 것을 촉진시킬 수 있는 장치들이 제도적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일종의 "공익가산점"이라는 이름으로 진학과 진급에 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것이 인간진보운동이라고 본다.

 


원문: 
http://moveon21.com/?document_srl=5477&list_module=17346&list_category=17379

 


  

땡순이    2009-11-08

"공익가산점"이라는 이름으로 진학과 진급에 이익을 주는 방법. 이것이 인간진보운동. 공감합니다!

천국거주심사도요, 점수에 절대적인 가중치를 두었으면 좋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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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콜로 / 200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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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프로만 노하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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