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해체할 것인가

 

1. 공동체주의 대 개인주의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의 대립구도를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딱 분절해서 말하지는 않겠다. 이 둘은 실은 음양의 법칙처럼 서로 상대적인 것이다. 공동체주의가 차면 개인주의는 기울고, 그 반대의 현상도 일어난다. 그런데 공동체주의가 승하게 되면 이 "스케일이 큰 구조물"을 유지하기 위한 매커니즘이 필요하게 된다. 공동체 안에 있는 개인들의 "공통인자"들을 최대한 강조하는 방법으로 "공동체주의"를 유지하게 된다. 종교나 이념이나 혈연이나 지연 등등이 있다.

 

이 점만은 강조하고 싶다.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추구해야 할 것은 "공동체주의"이지 개인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의 사회화나 요즘 식으로 말하면 시민의식을 말한다. 혼자 놔두면 야만인에 불과한 개인이 "사회"라는 공동체에 소속됨으로서 공동체적인 소양을 키우는가에 따라 성숙한 시민으로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공동체주의는 당위이고, 개인주의는 현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공동체가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특권층에 의해서 의미가 퇴색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는 개인들의 역량은 필요하다.

 

서구에서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가 큰 대립을 보였던 때는 전근대시대와 근대시대의 전환기였다고 보고 싶다. 소위 고전시대와 전근대기를 이루는 시기는 희랍-로마제국이라는 커다란 정치 공동체와 캐톨릭이라는 종교공동체가 있었다. 유럽은 라틴어로 하나의 집을 뜻하는 ""을 이루고 있었다. , 희랍-로마 문화와 캐톨릭 문화는 유럽 공동체의 헤게모니를 쥐고 기득권층화가 되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중세암흑시대가 오는데, 기득권층의 부패와 타락과 함께 고트족이나 바이킹 족과 같은 유목민족의 출현이 있었다. 이들은 유럽 땅에 새로이 이주해 들어왔지만, 이미 약해진 "중앙"에 종사할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유럽 공동체의 와해를 노렸다고 본다. 이들이 받아들인 것은 개인주의적인 근대였다고 본다. 이들의 근대화 사상은 일단 기득권화 되어가고 있는 봉건세력 (중앙)에 대한 주변부의 저항전략이자 반격 전략이었다고 본다.

 

문제는 이들 근대세력은 고전적인 관점에서 공동체적인 문화화가 덜 이루어진 미숙한 근대인들이었고, 그들은 그들 핏속에 숨겨져 있던 야만적인 습성을 잘 버리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근대에서 보는 것은 욕망의 폭주이며, 인간능력에 대한 절대에 가까운 과도한 낙관이었다고 본다. 이런 낙관주의가 깨어진 계기는 양대 세계대전이었다.

 

 

2. 탈근대는 근대에 대한 반성.

 

탈근대는 과도한 개인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것이 약간 복잡한 것이, 서구사회에서 개인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자본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만의 리그 또는 공동체"를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화폐가 부의 기준이 되고 자본의 상징이 되면서부터 자본가들은 화폐의 무한증식을 노리게 되었다. 농촌이나 어촌의 인구를 대량으로 도시로 끌어오면서 "생활의 규격화"로 자본을 축적했고. 개성과 개인주의라는 이름으로 과도한 소비 그리고 가격거품을 일으켜서 자본을 또 축적하고 있고, 이제는 파생상품이라는 실제가 있지도 않은 "하이퍼 상품"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있다. 자본은 이렇게 정신적으로 잘 여물지도 않고 인간의식이 잘 성숙되지도 않은 개인들의 허영심을 계속 부추기면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대량 소비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개인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가난하게 된다고 본다. 경제에 거품이 끼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인간의 능력에 대한 평가절하 또는 통렬한 주제파악을 외치는 것이 탈근대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우리가 또한 해체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개인주의적인 분열성과 욕망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불어서 속성은 철저하게 이기적이면서 "필요에 의해" 공동으로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자본의 이기심이다. 이 자본은 공동체의 구조 속에서 "기생" 하고 있다. 원래의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사회의 다른 기능들을 망가뜨리는 "바이러스" 같은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시면 알 것이다.

 

탈근대주의자들은 잠정적인 사람들이다. 서구인들 일부의 반성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자들이다. 개인주의의 끝에 좀 더 높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있다는 희망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경탄해 마지 않았던 수많은 인간의 능력들이 실은 복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전적인 의미의 공동체주의로 돌아올 것 같지도 않다. 기본적으로 자부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길을 잃어가고 있다. 조소를 가득 담고 "시차놀이" 또는 "상대성 놀이"를 질펀하게 벌이고 있다.

 

 

3. 우리 인간은 좀 더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우리 안에 있는 거품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본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탈근대주의자들이 파악한 것처럼 모든 것이 "복제"라면 역사는 다시 처음부터 "리붓" 될 수 있다. 단 지금까지 살아왔던 역사가 "실패"였다는 기억 하나는 새로운 업그레이드 버젼에서는 남아 커다란 변수가 되었으면 한다.

  

역사는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며 나선형으로 발전하는 것이라 본다. 인류는 경험의 복제를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근대의 역사에서 고전적인 "절대성"이 거세가 되어 버렸다면, 탈근대의 시대인 지금은 "욕망"이 거세가 되어야 할 차례라고 본다. 이젠 공동체주의의 차례이므로 또 하나의 "절대"를 세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진정성" 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원문: http://moveon21.com/?document_srl=4992&list_module=17346&list_category=17379

 

 

 

 

심행일치  2009.10.31

잘 읽었습니다.

"개인주의는 나쁜 것, 공동체주의는 좋은 것" => 이런 의미는 아니죠?

제가 이해력이 딸려서..

그리고 공통체주의 보다는 개인주의에 대해 제가 더 호감을 갖고 있는 거 같아서요.

 

 

피콜로   2009.10.31

물론 그런 식으로 딱 잘라서 말한 것은 아니죠. 다만, 근대식 개인주의는 실패에 가까웠다고 보는 것이죠. 숙성시킬 시간도 짧았고요, 자본이 건전한 개인의 성숙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당할 바에야 차라리 전략을 바꾸자는 것이죠.

 

 

봄봄   2009.10.31

우리사회는 오히려 변형된 독재의 의미로 공익이니 사회 안정이니 이따위 소리를 하죠.

우리 사회는 좀더 개인의 권익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사전적 의미에서....이기주의 말로

 

 

피콜로   2009.10.31

봄봄님: 개인의 권익은 법이라는 일종의 "공동선" 으로 다 정해져 있죠. 못 찾아 먹어서 문제가 생기죠.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것으로 법질서도 왜곡되고 있죠. 개개인들이 뭉쳐서 조직화 되지 않으면 이런 거 깨기 힘들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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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콜로 / 200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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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프로만 노하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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